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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7. 7世 〉19. <부정공>증가선대부이조참판공휘지강묘갈명(贈嘉善大夫吏曹參判公諱智崗墓碣銘)
1. 문헌 목록 〉7. 7世 〉21. <부정공>주강재상량문(住崗齋上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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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부정공>주강재기(住崗齋記)휘지강(諱智崗)
住崗齋記 智崗의 齋 我邦衣冠之族敦於孝思事亡之義類皆推及於親盡之祖爲之修墓爲之歲薦於以睦遠近之宗族貽子孫以嘉謨又多起墳菴於楸下以爲當祭齋宿之所此東方美風也趙氏籍玉川淳昌者爲國大姓而至副正公諱瑜始自籍鄉徙昇平之住巖副正公有孫曰智崗官至吏曹參判有德有鶴著以孝友其佳城在住巖面住巖洞副正公墓下副正公早有墓閣而子孫繁庶每當享祀舍不能容於是參判公脚下諸孫相與議曰吾參判祖遺裔己爲數千户之多盍爲別構丙舍以便容衆也於是闔宗無異貳者遂就副正公墓閣下一弓地胥字揆度不日起工而歷一年餘吿竣日趙門秀士將命而跋渉水草路就余謀記余辭匪任而終不許爲詢其形勞則云崗自呼鶴山迤遲回旋起伏踠蜒者數里而開局于此治堪輿者多來相宅兆者以爲境内罕比今此建齋額以住崗而爲制四間中二間爲廳廳爲會座議事之所左右各一間爲房房爲老少齋宿之所前望媚母后瑞石諸山聳出於遠近而傍有兩澗合流于前而入於實城江頗擅形勝云嗚呼參判公朝鮮成宗時人也其長子爲淸州判官次子爲慶州府尹府尹之子爲中宗駙馬則門閥可想而距今四百餘年間以文以武繼闡厥聲宗族之盛又如此是其非祖宗積德之攸發歟趙氏諸公其所思以祇承而裕後哉 檀紀四千三百二十三年庚午三月 日 星州 李栢淳 撰 주강재기(住崗齋記) 우리나라는 예의(禮儀)의 나라로 효성(孝誠)스런 마음이 돈독하여 돌아가신 분도 섬겨 대부분 친진(親盡)한 조상까지 제사를 지낸다. 그래서 묘(墓)를 가꾸어 해마다 제사를 지내니, 이렇게 함으로써 멀고 가까운 곳의 일가들이 화목(和睦)을 유지하여 자손들에게 좋은 모범(模範)을 남겨준다. 또 대부분 묘역 아래에다가 재숙(齋宿)하는 제각(祭閣)을 짓고 있으니, 이는 우리나라만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이다. 옥천(玉川) 또는 순창(淳昌)을 관향(貫鄉)으로 하는 조씨(趙氏)는 우리나라의 큰 성씨(姓氏)로 부정공(副正公) 휘(諱) 유(瑜)에 이르러 비로소 순창에서 승평(昇平)의 주암(住巖)으로 이사 하여 사셨다. 부정공의 손자 지강(智崗)은 벼슬이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이르렀는데 덕행(德行)과 학문이 있으셨으며 효자(孝子)로 알려졌다. 그 분의 묘가 주암면 주동(住洞) 부정공 묘소 아래에 있는데 부정공의 묘에는 일찍부터 제각이 있었으나 자손이 번성해 짐에 따라 매년 시제(時祭)때면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가 없었다. 이에 참판공(參判公)의 자손들이 상의하기를 「우리 참판공 할아버지의 자손이 이미 수 천호(户)나 되도록 많은데 어찌 제각을 지어 오는 사람들을 수용하지 않으랴?」 하니, 이의(異義)를 제기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부정공의 묘소 아래 한쪽에다가 터를 잡아 며칠 만에 역사를 시작하여 一년 남짓이 지나 준공(竣工)을 보았다. 하루는 조씨 문중의 선비가 집안 어른들의 명을 받들고 험한 길을 헤치며 나를 찾아와 기문(記文)을 청하였다. 나는 적임자가 아니라고 사양하였으나 끝까지 들어주지 않아 이에 다음과 같이 쓴다. 그곳 형세(形勢)를 물어보니, 이 언덕은 본래 학산(鶴山)이라 부르는데 산맥들이 구불구불 뻗쳐 꿈틀거리며 몇 리를 내려오다가 이곳에 국(局)이 열린다. 많은 풍수(風水)를 보는 자들이 와서 보고는 이 근처에는 여기에 비교할 만한 좋은 자리가 없다고 하는데 여기에다 재실(齋室)을 지어 주강재(住崗齋)라는 편액(扁額)을 달았다. 모두 네 칸으로 하여 가운데 두 칸은 회의하는 장소로 삼고, 좌우에 한 칸씩 방을 만들어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재계(齋戒)하며 잠자는 곳을 삼았다. 앞에는 아미산(蛾眉山)에 모후산(母后山), 서석산(瑞石山)이 멀고 가까운 곳에 우뚝우뚝 솟아있는 게 보이고, 옆에는 두 시냇물이 이곳에 이르러 합쳐져 보성강(寶城江)으로 흘러들어 경치가 아주 좋다. 아, 참판공(參判公)은 조선(朝鮮) 성종(成宗) 임금때 인물로 큰아들은 청주판관(淸州判官)을 지냈고 작은 아들은 경주부윤(慶州府尹)을 지냈으며 부윤의 아들은 중종(中宗)의 부마(駙馬)가 되었으니 이 집안의 문벌(門閥)이 좋음은 이로써 알 수 있다. 지금부터 四백년 동안 문관(文官)과 무신(武臣)이 끊임없이 이어져 명성을 날리고 떨쳐 그 번성함이 이와 같으니 이는 모두 조상의 덕(德)을 쌓은 결과가 아니겠는가? 조씨 여러분은 이를 생각하여 잘 이어 받들고 후손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檀紀四千三百二十三年庚午三月 日 성주(星州) 이백순(李栢淳)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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